온라인연극 선언

왕충(王翀)

2020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그들이 공개 토론장으로 삼았던 "연극"이 200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오이디푸스>에서 그렸던 전염병이 2000년이 지난 후 연극에 치명타를 줄 것이라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했습니다.

 공연은 멈췄고 극장은 문을 닫았으며 연극은 사라졌습니다.

 연극은 사라지고, 연극을 녹화한 영상만이 인터넷에 남았습니다. 물론, 녹화 영상은 연극이 아닙니다. 연극을 담은 졸렬한 기록이자 희미하고 막연한 기억일 뿐입니다.

 연극인들이 원망하는 소리와 슬퍼하는 소리가 도처에 가득했습니다. 사실 연극인들이 가장 비참했던 것은 일자리를 잃었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연극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21세기의 잔혹한 현실을 분명히 목도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모든 직업 가운데 연극이 팬데믹으로 인해 가장 먼저 문을 닫았고, 가장 나중에 문을 연 것도 연극이었습니다. 연극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됐던 것입니다.

  요식업도, 제조업도, 음악도, 넷플릭스도 모두 멈출 수 없었지만, 오직 연극만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팬데믹이 오고 나서야 연극인들은 연극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사실 연극은 진즉부터 그런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연극은 더이상 사람과 신을 이어주지 못했습니다. 연극은 더이상 긴긴밤을 밝히는 유일한 빛이 아니었습니다. 연극은 더이상 사람들을 일깨우는 소리를 내지 못하게 됐습니다. 연극은 더 이상 공개 토론장이 아닙니다. 거의 모든 연극은 우리 시대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핸드폰과 인터넷은 진작 인류의 새로운 감각 기관이 되었습니다. 사이버 펑크의 세계가 코 앞에 도래한 지금, 극장은 인터넷을 허용하지 않는 마지막 몇 안 되는 공간 중 하나입니다. 세상의 뉴스와 사건들이 초 단위로 발생하는 현재, 연극은 1~2년의 세월을 들여야만 비로소 무대에 올릴 수 있습니다. 인터넷 인구수가 전 세계 인구수에 육박할 때 연극은 아직도 소수의 사람만이 가지고 노는 신기한 장난감일 뿐입니다.

  연극은 여행 프로그램이고, 식사 후 즐기는 소일거리이며, 자본의 게임입니다. 연극이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된 것은 더 이상 공개 토론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연극은 공공의 공간도 아니고 토론의 장도 아닙니다.

  그러나 온라인의 세계는 공공의 공간이고 토론의 장입니다. 이 세계는 수십억의 인구가 공유하고 참여하는 곳입니다. 이 세계에는 무대와 객석이 있고 노천 광장이 있습니다. 이 세계에는 몸이 있고 공간이 있으며 쿵쿵 뛰는 심장이 있습니다. 이 세계에는 에너지와 빛이 있으며 시대 정신이 있습니다. 온라인의 세계는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세계 그 자체입니다.

  이 세상에서 연극인들은 맨손으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시간과 공간을 정의하고, 모든 언어와 기호를 다루며, 모든 현재와 미래는 창조합니다. 우리는 이 세계에서 더욱 쉽게 디오니소스의 정신을 찾을 수 있고, 또한 피터 브룩이 꿈꾸는 "직접적인 연극(immediate theatre)"에 더욱 쉽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연극은 결코 팬데믹 시기의 임시방편이 아닙니다. <오이디푸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팬데믹은 사라질 것이고 지혜로운 자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철저하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인류사회는 가상세계·증강현실·인공지능·인공생물로 가득할 것입니다. 인류의 예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류는 결국 “인류”와 “연극”을 재정의할 것입니다. 연극인들은 이미 "연극의 죽음"을 경험했기 때문에 계속 수수방관하거나 가만히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릴 수 없습니다. 온라인 연극은 연극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아니라 미래의 전주곡입니다.

  우리, 저와 제 친구들은 이 전주곡이 이미 울리기 시작했기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거나, 아니면 우리와 함께 갈 수도 있습니다.